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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summer of 1988, just as the Seoul Olympics were wrapping up, Madame Bong and her family prepared to uproot their lives and move to the distant land of Montreal. While Mme. Bong’s husband, Mr. Park, had visited Canada the year before, the rest of the family had no idea what lay ahead. Though Mr. Park had made the decision for the family, he wavered for many months, oscillating between wanting to move and start afresh and not wanting to leave his life behind. But Madame Bong was resolute. She was sick and tired of the grind: constantly earning money but never seeing it amount to anything significant. “The reason,” she says, “was my husband’s family. They demanded so much of us. Just because we lived in the big city, they assumed we had endless amounts of money. I was sick of paying back other people’s debts and never being able to save enough for our family. I was so excited to leave that damn place!”
When they first landed in Montreal, Mr. Park intended to run a depanneur (a corner store), as many immigrants of the time did. However, Madame Bong had different plans — she wanted to run a restaurant. While Mr. Park toured the city with a Korean realtor in search of a depanneur, Madame Bong pulled out her dictionary and painstakingly wrote the words, “I want to buy a restaurant.” She took her note to a local realtor near their NDG apartment. The realtor read the message, nodded, and took her and her eldest daughter to a space on Queen Mary.
The property was unique. The front was a typical office building with large glass doors, a CIBC bank on the ground floor. But once you passed through the main lobby, a hallway led to a heavily decorated wooden door that some children found intimidating. Inside, there was a coat rack on the left and a large wall mirror on the right. The restaurant lacked natural light, but the previous owner had installed fake windows with lighting to mimic daylight. The space was larger than Madame Bong had imagined, but she felt an immediate connection to it.
That evening, she told Mr. Park about the space, but he shrugged it off. Still, Madame Bong couldn’t get it out of her mind. She eventually convinced Mr. Park to visit the property, and not long after, they signed the papers. The night before the restaurant’s opening, Madame Bong had a vivid dream. She was in her new restaurant, and heavy rain pushed a mountain of sand through the back door. She interpreted this as a good omen — a sign of blessings, juju, karma, or fortune for her family. She kept the dream a secret until the day they sold the restaurant 15 years later.
The previous owners, a family from Yugoslavia, graciously helped the Parks transition into their new venture. They taught Madame Bong how to prepare American breakfasts and Western desserts. In return, she cooked Korean meals for the staff, and they quickly became friends. Food, after all, is a universal love language.
On the official opening day, Madame Bong invited all the Korean people they had met in Montreal, along with their aunts and cousins, and offered free food all day long. Koreans brought so many plants and flowers that they overflowed into the hallway and even the main lobby. When the restaurant opened for regular business the next day, Madame Bong and Mr. Park worked tirelessly to serve both Korean and American food.
Sometimes, white office workers stepped out of their comfort zones to try Korean dishes they had never eaten before. During the first week, one customer ordered Madame Bong’s dwenjang jjigae (a fermented soybean stew) — a dish known for its strong, pungent aroma and as an acquired taste. Madame Bong wondered if serving it had been a mistake, but she was stunned when the customer returned the bowl completely emptied. She stared at the dried-out bowl for several minutes, amazed and delighted that a non-Korean person could understand and love her food. This continues to fascinate her to this day.
But for every customer who appreciated her cuisine, there were two or three who didn’t. The Parks dealt with numerous complaints about the smell, returned dishes, disappointed expressions, and many unfinished meals. Yet, they pressed on, determined to introduce Montreal to the flavors of Korea and share their culture one dish at a time.
Even today, 35 years later, some of those office workers still visit Madame Bong in Chinatown. She likes to tell the story of one family in particular, who became regulars. The father, a lawyer who worked in the Queen Mary building, fell in love with her cuisine and brought his wife and children weekly. Even after his passing, his wife, children, and grandchildren continue to visit Madame Bong.
This is how Montreal’s first authentic Korean restaurant was born.
1988년 여름, 서울 올림픽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봉 여사와 그녀의 가족은 삶의 터전을 옮겨 먼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봉 여사의 남편 박 씨는 전년도에 캐나다를 방문했지만, 가족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박 씨는 가족을 위해 이 결정을 내렸지만, 몇 달 동안 새로운 시작을 위해 떠나고 싶다는 마음과 자신의 삶을 뒤로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습니다. 그러나 봉 여사는 단호했습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돈을 벌면서도 그 돈이 아무런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삶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녀는 말합니다, “제 남편의 가족 때문이었어요. 그들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죠. 우리가 큰 도시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끝없는 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의 빚을 갚느라 우리 가족을 위해 저축할 수 없었던 삶이 정말 지겨웠습니다. 이젠 그 고된 곳을 떠나는 게 너무나도 기뻤어요!”
몬트리올에 도착했을 때, 박 씨는 많은 이민자들처럼 ‘데파너’(작은 편의점)를 운영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봉 여사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식당을 운영하고 싶었습니다. 박 씨가 한국인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데파너를 찾아 도시를 둘러보는 동안, 봉 여사는 사전을 꺼내 “나는 식당을 사고 싶다”라는 문장을 정성껏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 쪽지를 NDG 아파트 근처의 지역 부동산 중개인에게 가져갔습니다. 중개인은 이 메모를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그녀의 큰딸을 퀸 메리 거리의 한 장소로 데려갔습니다.
그 식당은 독특했습니다. 건물 앞쪽은 대형 유리문이 있는 일반적인 사무실 건물로, 1층에는 CIBC 은행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인 로비를 지나면 복도가 나오고, 그 끝에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다소 위압적으로 보일 수 있는 화려하게 장식된 나무문이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는 옷걸이가, 오른쪽에는 큰 벽 거울이 있었습니다. 식당은 자연 채광이 부족했지만, 이전 주인이 낮을 모방한 조명을 설치한 가짜 창문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공간은 봉 여사가 상상했던 것보다 컸지만, 그녀는 그곳에 즉각적인 연결을 느꼈습니다.*****
그날 저녁, 그녀는 박 씨에게 그 공간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는 무심하게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 여사는 그 공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박 씨를 설득해 그 부동산을 방문하게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식당을 열기 전날 밤, 봉 여사는 생생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녀는 새 식당 안에 있었고, 폭우가 뒷문으로 모래산을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를 가족에게 주어질 축복, 운, 혹은 행운의 징조로 해석했습니다. 그녀는 이 꿈을 식당을 매각한 15년 뒤까지 비밀로 간직했습니다.
이전 주인인 유고슬라비아 출신 가족은 박 씨와 봉 여사가 새 사업에 적응하도록 친절히 도왔습니다. 그들은 봉 여사에게 아메리칸 브렉퍼스트와 서양 디저트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 대가로 그녀는 직원들에게 한식을 만들어주었고, 그들은 금세 친구가 되었습니다. 음식은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사랑의 언어니까요.
공식 오픈일에, 봉 여사는 몬트리올에서 만난 모든 한국인들, 그리고 그녀의 이모와 사촌들을 초대하여 하루 종일 무료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수많은 화분과 꽃을 가져왔고, 그것들은 복도와 심지어 메인 로비까지 가득 찼습니다. 다음 날, 식당이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하자 봉 여사와 박 씨는 한국 음식과 아메리칸 음식을 제공하느라 분주하게 일했습니다.
때로는 백인 사무직 직원들이 새로운 한국 요리를 시도하기 위해 자신들의 익숙한 메뉴에서 벗어났습니다. 첫 주에 한 고객이 봉 여사의 된장찌개(발효된 콩으로 만든 찌개)를 주문했는데, 이 요리는 강한 냄새와 독특한 맛으로 유명하며 쉽게 익숙해지기 어려운 음식입니다. 봉 여사는 이것을 내놓은 것이 실수였는지 고민했지만, 그 고객이 빈 그릇을 들고 돌아왔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말라 있는 그릇을 몇 분 동안 바라보며,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자신의 음식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기뻐했습니다. 이 경험은 지금도 그녀를 매료시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음식을 좋아하는 손님 한 명마다 그 맛을 싫어하는 손님 두세 명이 있었습니다. 박 씨와 봉 여사는 음식 냄새에 대한 불평, 반송된 요리, 실망한 표정, 그리고 먹다 남겨진 많은 음식들과 마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국의 맛을 몬트리올에 소개하고, 한 접시 한 접시씩 그들의 문화를 나누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35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사무직 직원들 중 일부는 차이나타운에서 봉 여사를 찾아옵니다. 그녀는 특히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 가족의 아버지는 퀸 메리 건물에서 일하던 변호사로, 그녀의 음식을 사랑하게 되었고 아내와 아이들을 매주 데리고 왔습니다. 그의 사망 후에도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손자들까지 봉 여사를 계속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몬트리올 최초의 정통 한국 식당이 탄생했습니다.